나름 재미있는 구성이다.
신화로 인간을 말하다, 북유럽신화와 그리스로마신화CULTURE
2011/12/07 17:06
http://blog.naver.com/classictaste/145216740
언제나 운동화 브랜드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이키'를 모르는 사람은 없겠죠. 하지만 브랜드 네임인 '나이키'의 본 뜻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은데요. 놀랍게도 '나이키'의 어원은 그리스 로마신화에서 승리의 여신으로 칭송 받는 니케(Nike)에서따온 말입니다. 'NIKE'를 니케가 아닌 나이키로만 알고 있었던 분들은 꽤 놀라실 것 같네요.
영어로 수요일을 뜻하는 Wednesday의 의미도 신화에서 신화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는 북유럽신화의 최고 신인 '오딘의 날'이란 뜻에서 나온 단어죠.
이처럼 신화는 우리 생활 곳곳에서 묻어나옵니다. 그만큼 신화는 인간에게 신화거나, 종교이거나 하는 문제를 떠나서 그들 이야기로 인간을 배우는, 친숙한 존재일 텐데요. 이런 신화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우리가 잘 아는 그리스 로마 신화와, 그 보단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북유럽 신화입니다. 두 개의 신화는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닮은 점이 많은데요. 오늘은 북유럽 신화와 그리스 로마 신화 두 가지를, 신화의 라이벌로서 비교하며 얘기해 보려 합니다.
먼저 두 신화를 비교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최고 신인 제우스와 북유럽 신화의 최고 신인 오딘으로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요. 잘 아시다시피, 올림푸스 최고의 신인 제우스는 타이탄이라고 불리는 거인신족 중 크로노스와 그의 아내 레아의 아들이죠. 포세이돈, 하데스,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등의 동생으로 6형제에 막내지만
자식들이 자신 위로 군림할까 두려워 그들 모두를 삼켜버렸던 아버지 크로노스에게서 형제들을 구해내며 올림포스의 최고의 신으로 자리매김 합니다.
-여자인 아르테미스의 모습으로 칼리스토를 유혹하는 제우스
헤라를 아내로 둔 제우스는 천둥과 번개를 다루는 능력 말고도 수많은 여자를 뜻대로 취하는 것으로도 유명하죠. 제우스가 아르테미스의 시중을 드는 님프 칼리스토를 취하기 위해, 딸인 아르테미스의 모습으로 변해 동침한 것은 유명한 일화입니다. 또한 강의 신 이나코스의 딸 이오를 유혹해 검은 구름으로 은폐한 뒤 사랑을 나누다 헤라에게 들켜 이오를 암소로 변신시키는 등, 제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최고 신이면서도 여인들과 수많은 염문을 퍼트리고 다닌 최고의 호색한이라고도 할 수 있죠.
-독수리로 변신해 가니메데스를 납치하는 제우스
또한 제우스의 이런 '바람끼'는 미소년에게까지 마수를 뻗쳤는데요. 그는 당시 미소년으로 유명했던 트로이의 왕 트로스의 아들 가니메데스를 탐해, 그를 독수리로 만들어 납치한 뒤 신들의 술 넥타르를 따르는 시중을 들게 합니다. 남자고 여자고 틈만 나면 탐욕을 드러내니 아내 헤라가 괜히 질투의 화신이 된 건 아닌 것 같네요.
-인간 세계를 넘나들며 감정과 사고를 전달하는 '후긴'과 기억을 전달하는 '무닌'이란 오딘의 까마귀 두 마리
한편, 여인들을 얻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제우스와는 다르게 북유럽 신화의 오딘은 더 많은 지혜를 얻기 위해 어떤 일도 마다하지 않는 신이었습니다. 오딘은 신들의 조상, 부리의 손자이자 보르의 아들이며 거인 이미르의 몸뚱아리로 세상을 만든 창조주이기도 하죠. 세상을 창조 한 뒤 그는 더 많은 지혜를 얻으려 했습니다. 그래서 지혜의 정령이자 거인인 미미르가 지키는 지혜의 샘물을 마시기 위해, 자신의 한쪽 눈을 뽑아 미미르에게 건네며 현세의 모든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눈을 잃는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죠. 또한 오딘은 목숨을 건 명상을 통해 현세의 지혜를 초탈한 깨달음인, 내세의 지혜까지 얻었다고 하니 오딘의 지혜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이 깊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겠네요. 아무래도 권력을 가진 최고의 자리에 올라선 남자들은 언제나 하나에는 만족하지 못하는 법인가 봅니다.
-아도니스와 밀회를 나누다 헤파이스토스의 그물에 걸리는 아프로디테
또한 신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신들의 사랑얘기인데요. 이는 워낙 유명한 일화들이 많으니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혹시나 궁금해하실 분들을 위해 한 가지 팁을 드리자면, 그리스 로마 신화의 사랑이 대체로 세련된 것 같으면서도 결국은 신의 전지전능함을 이용한 일방적인 사랑과 치정이라면, 북유럽 신화는 온갖 우스운 꼴을 당하고 쩔쩔 매가며 구애를 하고 딱지까지 맞는 신들의 사랑 얘기가 허다하니 이를 비교해가며 찾아 보시면 재미있으실 것 같네요.
이번에는 신화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전쟁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는 초기 타이탄과의 전쟁인 티타노마키아를 제외하고는 장대한 전쟁의 모습을 찾아보긴 힘듭니다. 대신 테세우스, 벨레로폰, 헤라클래스, 이아손 그리고 마지막 오디세우스까지 영웅 개인이 용기로 시련에 맞서는 이야기가 많죠. 그런데 전쟁이든 개인의 싸움이든, 독특한 점은 늘 신들의 개입이 있다는 것인데요. 그 유명한 트로이 전쟁 역시 신들 사이에서의 질투로 시작되었다고 하죠.
이는 세 여신이 '가장 아름다운 여신께'라고 적힌 황금사과를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그 유명한 일화에서 시작됩니다. 아프로디테는 이 문제의 판결을 맡은 양치기 파리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주겠다는 약속을 해준 뒤 결국 사과를 차지합니다.아프로디테는 약속을 위해 스파르타 궁전의 헬레네를 파리스의 아내로 보내주죠.
이에 스파르타에서는 헬레네의 남편이 그녀를 되찾기 위해 트로이를 쳐 들어 가는데요. 바로 이것이 10년간이나 지속된 트로이전쟁의 시작입니다. 단지 신들의 시기 질투와 허영으로 생겨난 이 전쟁이, 수많은 영웅들과 '트로이 목마' 등을 탄생시키는 대규모 전투로 기록된걸 보면 그리스 로마 신화가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밀접한 존재로 여겨지는지 알 것 같네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전쟁 이야기가 인간에게 절대 권력을 보이는 인간 이상의 존재임을 입증하는 이야기였다면, 북유럽 신화에는 본격적으로 신들 간의 전쟁이 등장합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바네신과 아제신들의 전쟁인데요. 바네신들은 평화와 풍요를 상징하고, 아제신들은 주로 전쟁에 관계가 있습니다. 바네신과 아제신들의 전쟁은 굴바이크 여신에서 시작되는데요.
오딘을 찾아간 굴바이크가 그들을 염탐한 것으로 착각한 아제신들에 의해 고문당해 죽음의 문턱에서 겨우 돌아오자, 화가 난 바네신들은 아스가르드로 쳐들어갑니다. 바네신들은 아제신들에게 신으로서의 대등한 관계와 권리를 요구하지만 오딘이 창을 던지면서 엄청난 전쟁이 시작되게 됩니다. 결국 바네신들은 전쟁이 마를 날 없던 아제신들에게 패배한 뒤 북유럽 신화에서 모습을 감추고 맙니다.
또한 북유럽 신화에서 흥미로운 점은 아직 시작되지 않은 전쟁인 '라그나로크'를 기다리고 있다는 점입니다. 라그나로크는 '신들의 황혼'이란 뜻인데요. 신들의 멸망, 그리고 이 세계의 멸망을 뜻합니다. 이것은 오래전에 예언된 것으로 주신 오딘 조차 그 운명을 바꿀 수 없는 예정된 멸망입니다. 오딘은 지혜를 계속 쌓으면서, 토르는 거인족들을 잡으면서, 하임달은 이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결국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죠. 신들에게 마지막이 있고, 그 멸망을 준비하는 신들이라니 새삼 불멸이란 없는 인간 세계와 무척 닮은 신화라는 생각이 드네요.
-북유럽 신화에서 사랑과 풍요를 상징하는 아름다움의 여신 프레이야
두 가지 신화를 비교하다 보니 비슷한 양상도 많지만 다른 양상들이 더 눈에 띄는데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인간 위의 '절대권력'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면 북유럽 신화의 신들은 '보다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이런 차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신화가 발생한 환경에서 만들어진 차이인 듯 합니다.
신화는 인간에 의해 탄생했기에 인간을 닮아있다고 하죠. 많은 식민지를 가지고 따뜻한 기후로 풍족하게 살던 그리스인들은 인간을 최고라 생각하듯 최고의 신을 만들고 싶었을 겁니다. 인간을 뛰어 넘을 만큼 말이죠. 아마 자신들의 욕망이 무한한 능력을 지닌 신으로 표현된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반면 혹독한 기후 속에서 살아 남아야 했던 북유럽에서는, 인간 보다 절대적으로 우월한 신의 세계에서도 나약함과 정해진 멸망을 그려 넣어 서로에게 위안을 주었던 것이 아닐까요. 절대강자라는 신의 세계에서도 고통과 나락은 존재한다 여기며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 내려던 것이죠.
저는 개인적으로 화려하고 신들의 때론 이기적인, 절대적인 모습이 보이는 그리스 로마 신화보단 그들 나름대로 고통과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북유럽 신들의 이야기에 더 마음이 가는데요. 어쩌면 혹독한 기후의 유럽인들처럼 어딘가에 빗대어 위로 받고 싶은 마음인 걸지도 모르겠네요. 인간을 위해, 인간이 만든 신화라면 여전히 인간중심인 우리 사회에도 신화는 존재합니다. 제가 재밌게 읽었던 책의 한 구절을 소개해 드리죠.
'갑자기 내 눈앞에 타이탄(트럭)신이 지나가고 그 뒤로 옷을 짜는 여신 그레이스(봉고차)가 지나갔다. 겨우 숨을 돌리는데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의 수천 명의 추종자들이 거리를 뛰어다니고 비너스가 운영하는 속옷가게, 백화점의 에르메스 신전, 아도니스 양말, 메두사의 얼굴(베르사체), 제우스 시계와 아예 올림푸스(카메라)까지… 시, 공간, 자연의 법칙을 초월해 사람들의 숭배를 받는 그것들은 분명 현재에 존재하는 신이자 신화이다'
과거 신화 속에서 인간이 신을 숭배하듯 현대의 사람들은 브랜드를 숭배하며 신으로 여긴다는 이야긴데요. 마냥 우스갯소리로 들리지는 않죠. 한 편으로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앞서 제가 말한 것처럼 신화 역시 인간의 필요로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면, 브랜드 역시 인간에게 필요한 신화일 테니까요.
제가 지노 다비도프의 인생을 추구하고 그를 롤모델로 삼으며, 다비도프를 피우는 것이 저에게는 신화나 마찬가지지만 누구도 이것이 잘 못 됐다고 말하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인간에의 필요'라는 신화의 특성을 생각해 본다면 인간은 누구나 기쁨이나 위안, 만족을 얻는 신화 하나쯤을 숭배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것이 나이키 운동화든, 다비도프든, 뮤지션이든 말이죠. 물론 그것 모두 인간에 의해 탄생한 신인 것이구요.
인간중심의 세상에서 어쩌면 신화는 인간으로서의 정신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필수 매개체가 아닐까 싶습니다. 북유럽인들이 북유럽 신화를 통해 혹독한 시련을 견뎌내며 위안을 얻듯 우리도 자신만의 신화로 위안과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물론 그 형태는 천차만별이겠죠.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인간이 만들고 인간이 위안받는 신화. 당신에게도 그런 존재가 있나요? 아마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 당장 나를 사랑하기 위해 숭배하는 무엇인가가 번쩍 떠오르실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당신의 현대판 신화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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