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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감옥에서 30일 "이제 출소합니다"

오마이뉴스 | 2011/04/10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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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이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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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만 힘내요" 실험 종료를 앞두고, 먼저 도전을 마친 박준영 씨가 유리집 안의 박승제 씨를 응원하고 있다.
ⓒ tvN

'출소' 15분 전. 집 안의 박승제(26)씨를 제작진과 카메라가 바깥에서 지켜보고 있다. 그는 초조한 듯 유리벽 앞을 서성였다. 30일 동안 고립된 생활을 한 그에게 세상으로 나가기 전의 단 몇 분은 몇 시간마냥 길어보였다. 또 다른 카메라는 한결 여유로운 표정으로 이 과정을 지켜보는 박준영(20)씨를 담고 있었다.

지난 4월 8일, 케이블 방송 tvN 스페셜의 실험 다큐 <스마트폰 생존기> 촬영이 진행되고 있는 가평의 한 전원주택의 풍경이다. 3월 10일부터 30일 동안 참가자 2명이 스마트폰으로만 생활하는 리얼 프로젝트의 마지막 날이었다. 그동안 박승제씨는 혼자 CCTV가 설치된 유리집에 갇혀, 박준영씨는 전국일주를 하며 스마트폰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의 효용을 체험했다.

"세상에서 가장 작지만 큰 감옥에서 출소한 것 같아요"

오후 2시, 실험이 종료되자마자 바깥으로 나온 박승제씨는 동생과 친구가 사온 두부를 한 입 베어 물고는 "집이 넓어 보이지만, 스마트폰만으로 생활하는 저는 작게 느껴졌어요"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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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생이 가장 힘이 됐어요" 박승제 씨(왼쪽)가 쌍둥이 동생 박승민씨에게 출소(?) 기념으로 두부를 선물 받았다.
ⓒ tvN

초반에는 어려울 게 없었다. 스마트폰을 이용해 대형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사고, TV를 보며, 트위터로 소통했다.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쥐고 있으니 1주일 만에 트위터 팔로워 수가 1000명을 넘었다. 30일 동안 그가 남긴 트윗만 3000개가 넘는다. 하루에 100개 이상의 멘션을 쓴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외로워졌다. 온라인상에 수많은 친구가 있음에도 그는 고립감을 느꼈다. 팔로워 수는 그에게 소통상대가 아닌 그냥 숫자일 뿐이었다. 북적이던 SNS 광장이 조용해지는 주말이면 온전히 혼자라는 걸 절감했다. 갈수록 응원 메시지도 줄어들었다. 결국 실험 15일 만에 그는 80여 명만 남긴 채 모든 팔로워를 삭제했다.

항시 자신을 지켜보는 카메라를 향해 극도의 분노를 표출하는 바람에 제작진이 촬영을 중단하기도 했다. 그 전에 그가 카메라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사각지대이자 집 안에서 유일하게 햇빛이 잘 들어 '광합성 자리'라 불리는 계단 위뿐이었다.  

"여기 온 지 일주일이 지나고 구토를 했어요. 평상시에는 그런 적이 없었는데 너무 SNS에만 매달리고 카메라에 둘러싸인 환경에서 감시를 당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나 봐요. 일단 소통을 텍스트로만 하다 보니 내 마음대로 해석하게 됐어요. 나중에는 사람이 보기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읽는다던지, 음악을 듣고, 운동을 하는 개인적인 소통만 하게 됐어요."

유리집에서 그에게 가장 도움이 된 건 트위터가 아닌 팔굽혀펴기 개수를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 "몸을 지치게 해서 빨리 잠들 수 있기 때문"이라는 답변은 그가 홀로 삼킨 외로운 시간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 박승제씨가 힘들어할 때 가장 대화를 많이 했던 사람은 쌍둥이 형제 박승민씨다. 온라인상으로 사귄 친구들과 달리, 그가 표정과 몸짓을 기억하는 동생은 소통에 대한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강원도에서 청국장 네 덩이 받아왔는데, 한 덩이 드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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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금 도착했어요" SNS 친구 외에는 대화를 할 수 없는 박준영 씨가 전국 일주를 끝내고 8일 촬영지인 가평으로 왔다.
ⓒ tvN

또 다른 참가자 박준영씨의 경우는 오프라인에 소셜 네트워크가 얼마나 퍼져있는지 확인하는 실험인 만큼 발품을 팔아야했다. 하루 다섯 명의 SNS 친구를 만나고, 하루 한 끼의 식사와 15일간의 잠자리를 제공받으면서 전국을 여행하는 미션이 주어졌다.

팔로워 수 0명의 새로운 계정이어서인지, 스마트폰 사용자가 적은 지역이어서인지 처음 이틀간은 트위터 친구를 만날 수 없었다. SNS 친구 외에는 아무하고도 이야기할 수 없는 수칙 때문에 말을 해야 할 상황에는 필담을 했다. 하지만 팔로워 수가 늘어나면서 도움의 손길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이발을 해야겠다고 하니 트위터 친구가 "나도 지금 미용실 가는데 그쪽으로 오라"며 비용을 대신 지불해줬다. 잔디를 심거나, 구청에서 타이핑을 하는 아르바이트 자리도 제공 받아 교통비를 벌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만난 해녀 할머니는 메모지로 인사를 건네는 스무 살 청년에게 따뜻한 잠자리를 제공했다. 여기저기서 도움을 받은 덕분에 여관에서 잠을 잔 날은 30일 중 5일뿐이었다.

"처음 가 본 도시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밥을 사주고 잠도 재워줬어요. '만약 우리 집 앞에 누가 왔을 때 나는 선뜻 그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번 여행을 통해 굉장히 많은 방면에서 소통할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촬영 날 아침에 태백에서 올라온 그는 10kg이 넘는 배낭에서 그동안 받은 선물을 자랑하기 위해 꺼내 보였다. 강원도에서 가져온 청국장 네 덩이, 제주도에서 받은 한라봉 잼, 이외수 소설가의 사인이 선명한 책 세 권. 화천에서 받은 감자떡과 쌀국수는 배낭에 넘치는 도움 덕분에 택배로 부쳐야 했다. 이 외에 박원순 변호사, '메가쇼킹' 고필헌 만화가 등 직접 연결되기 어려웠던 파워 트위터러와의 만남도 그에게는 신기한 선물이 됐다.

그에게 팔로워의 의미를 묻자 "직접 만나지 않아도 연령과 지역의 한계를 넘어 친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대답했다.

'스마트'하게 살 수는 있지만 인간의 삶은 아니다

박승제씨는 "당분간 트위터는 못하겠어요"라고 하면서도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다. 2주 만에 스마트폰에 환멸을 느끼고, 제작진에게 "포기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힘들었지만 그를 다시 일으킨 것도 SNS를 통한 소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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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없는 외침 바깥 세상과 소통할 수 없었던 박승제 씨가 유리창에 매직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써 놓았다.
ⓒ tvN

촬영지가 자동차로도 근접하기 어려운 비포장도로 끝 언덕에 있어 트위터 친구들이 찾아오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보낸 소포는 도착했다. 그 안에는 온라인에서 나눈 대화가 현실이 돼 담겨 있었다. 이를테면, 스트레스 받은 이야기를 나눈 후에는 초콜릿이 배달돼 왔다. 책을 보내준 사람도 있었다. 읽은 후에 돌려달라는 요구사항 때문에 온라인에서의 인연은 오프라인으로 계속될 것 같다.

"물질적인 선물이라서가 아니라 나를 묵묵히 지켜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고 감동을 받았어요. 앞으로 일상의 소중함, 소수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고 세상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도구로 SNS를 활용하고 싶어요. 스마트폰을 사용하면서도 결국 직접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는 게 진정한 소통이 아닐까 싶습니다."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SNS를 이용했던 박준영씨도 새로운 계정을 만들었다. 그는 도움을 받은 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SNS 활용을 희망했다. 물론 이번 기회로 만든 인연도 이어갈 것이다. 순회했던 지역마다 다시 놀러오라는 성원이 벌써부터 빗발치고 있다.

실험이 끝난 후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묻자,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답변이 재밌다. 박승제씨는 "밖에서 텍스트가 아닌 사람의 얼굴 표정을 보며 밥을 먹고 싶어요"라고 말한 반면, 박준영씨는 "내 집에서 먹고, 자는 게 소원이에요"라고 답했다.

손바닥 만한 스마트폰 세상에 펼쳐진 SNS라는 광장에서도 박승제씨는 밀실에 갇혀 외로워했고, SNS의 도움으로 넓은 세상을 여행한 박준영씨는 보다 개인적인 공간을 원했다. 스마트폰만으로 살아가는 것, 결국 스마트하게 살 수는 있어도 인간답게 살 수는 없다는 걸 반증하는 것일까. 각자의 광장과 밀실로 떠난 두 사람의 모습은 다음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두 가지 공간의 어느 한 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최인훈, <광장>)

제작진도 함께 버틴 30박 31일 생존기

4월 29일과 5월 6일 2부작으로 방송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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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박 31일 동안 스마트폰만으로 생활한 기록은 실험 다큐멘터리로 방송될 예정이다.
ⓒ tvN

300만원의 상금이 걸린 이 실험 프로젝트에 본인의 30일을 고스란히 걸겠다는 지원자들 중에는 20대는 물론 30대 가장까지 있었다. 팔로워 수로 국내 30위 안에 드는 파워 트위터러도 있었지만 SNS가 확산되는 과정을 보고 싶었던 제작진에게 높은 활용도는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원래 참가자는 남자와 여자 1명씩으로 예정돼 있었다. 실험 기간 동안 사용할 트위터 계정 역@tvNspecial_she와 @tvNspecial_he로 정해진 상태. 하지만 당돌한 스무 살 박준영씨가 만장일치로 '그(he)'에 선정된 후, 마지막 남성 지원자 박승제씨가 나타나 '그녀(she)'의 자리까지 꿰찼다. 계획까지 바꿀 정도로 매력적인 두 참가자는 제작진의 기대에 부응하듯 힘든 프로젝트를 멋지게 끝마쳐 줬다.

두 사람만 30일을 버티어 낸 것은 아니다. 연출을 맡은 강효임 PD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사람의 상황을 트위터로 중계했다. 강 PD는 활발한 성격의 박승제씨가 고립돼 외로워하는 모습은 현장에서 직접 바라보고, 어린 박준영씨의 여정은 온라인으로 지켜보며 사람들에게 격려를 부탁했다. 두 사람과 제작진의 30박 31일은 tvN 스페셜 홈페이지에 게재된 생존일기에, 그리고 트위터에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

tvN의 특별한 실험 다큐멘터리 <스마트폰 생존기>는 4월 29일과 5월 6일 밤 9시, 총 2부작으로 방송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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